포항 용계정 늦가을 물가에 스민 고요한 정자 풍경
늦가을 오후, 포항 북구 기북면의 용계정을 찾았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이라 공기 속에 금빛 먼지가 섞여 있었고, 들판 끝자락에서부터 물길 소리가 은근히 들려왔습니다. 좁은 시골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낮은 언덕 위로 단정한 기와지붕이 보였습니다. 용계정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학문과 시회를 즐기던 정자로, 이름 그대로 ‘용이 물가에 잠긴 듯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물소리와 나무 흔들림이 한데 어우러졌고, 건물 전체가 주변 풍경 속으로 스며든 듯했습니다. 계절이 달라져도 이곳의 고요한 품격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1. 기북면에서 용계정으로 향하는 길
포항 시내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 내비게이션에 ‘용계정’을 입력하면 기북면 오덕리 쪽으로 안내됩니다. 도로는 완만한 농로를 따라 이어지며, 길가에는 벼 이삭이 누렇게 익어 고즈넉한 농촌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안내석을 지나면 작은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가 있고, 그 위로 정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차 공간은 정자 옆 공터에 마련되어 있으며, 도보로 오르기 전 짧은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길 양옆으로 대나무와 느티나무가 자라 있어 걷는 내내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집니다. 길의 끝에서 바라본 정자는 돌기단 위에 세워져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했습니다. 접근 동선이 짧지만 풍경이 다채로워 산책하듯 오르기 좋았습니다.
2. 정자의 구조와 공간의 인상
용계정은 팔작지붕의 목조건축으로, 중앙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기단은 자연석을 이용해 층층이 쌓아올렸고, 그 위에 놓인 나무기둥이 균형 잡힌 비례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청에 오르면 계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바람이 통로처럼 흘러들어옵니다. 마루 바닥은 오래된 목재의 결이 그대로 살아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미세한 탄력이 느껴졌습니다. 천장의 서까래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걸린 현판 ‘용계정’의 붓글씨는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웠습니다. 정자 내부에는 인위적인 장식이 거의 없고, 대신 자연의 빛이 시간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3. 용계정이 지닌 역사와 상징성
용계정은 조선 중기 학자인 이진녕 선생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정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용계(龍溪)’는 정자 앞을 흐르는 시냇물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며, 물길이 용이 굽이치는 듯한 형세를 닮아 붙여졌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은 단순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닦고 학문을 논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건물은 17세기 중반에 세워졌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처마 밑에는 붉은색 단청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고, 그 위에 쌓인 세월의 층이 건축의 품격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이름처럼 정제된 물가의 정자, 그 자체로 선비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4. 정자 주변의 자연과 배려된 공간 구성
정자 앞에는 잔잔한 개울이 흐르고, 바위 위로 낙엽이 천천히 흘러내렸습니다. 마당 한켠에는 벤치 대신 평평한 돌이 놓여 있어 앉아 쉬기에 좋았습니다. 주변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섞여 있어 계절마다 다른 향이 퍼졌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잔잔한 음악처럼 들렸습니다. 안내문에는 정자의 역사와 복원 과정이 간략히 적혀 있었으며, 별도의 해설은 없지만 글 몇 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전해졌습니다. 인공조명 대신 자연광만으로 공간이 유지되어, 오후 햇살이 서쪽 처마를 스칠 때 정자의 표면이 따뜻하게 빛났습니다. 사람의 손길보다 바람과 물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그런 여유로움이 있었습니다.
5. 주변 명소와 연계할 만한 코스
용계정을 관람한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오어사’를 함께 방문하면 좋습니다. 두 곳 모두 조용한 산자락에 자리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건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또한 기북면 인근에는 ‘포항운제산성’이 있어 가벼운 등산 코스로 이어가기 좋습니다. 점심은 근처 ‘기북한우마을식당’에서 지역산 한우구이나 된장찌개 정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오후에는 ‘포항운제천 생태탐방길’을 걸으며 개울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 산책을 즐기면 하루 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역사와 자연, 그리고 여유가 고르게 조화를 이루는 코스로 가족 단위 여행에도 적합했습니다.
6. 방문 시 유의사항과 관람 팁
용계정은 국가 지정문화재로 보호되고 있어 내부 출입은 제한됩니다. 정자 마루에 오를 때는 신발을 벗고, 주변 기단 위에 오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전 9시 이전에는 햇빛이 물 위로 비쳐 정자와 개울이 함께 반사되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물가가 미끄러우므로 미끄럼 방지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봄에는 개울가에 매화와 벚꽃이 피어 사진 촬영 명소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여름에는 모기나 벌레가 많아 긴 옷차림이 유용합니다. 한적하게 머물며 조용히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이 이곳을 가장 깊이 느끼는 방법이었습니다.
마무리
용계정은 단아한 건축과 자연의 흐름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정자였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나무와 물, 바람이 만든 조화 속에서 오랜 세월의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바닥의 나뭇결, 물 위에 비친 기와 그림자, 그리고 바람의 결이 모두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지고, 생각이 단정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비 오는 날 다시 찾아, 물안개 속에 잠긴 정자의 모습도 보고 싶습니다. 세월의 깊이를 품은 이 정자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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